2차선 다리 하나로 육지와 연결된 작은 마을 임하도. 이곳에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한 임하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임하지역아동센터는 박양문(56)센터장이 임하교회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신안이 고향인 박센터장은 지난 2000년 2월 7일 임하도에 발을 디뎠다. 당시 그는 아버지의 양식업을 돕다가 42세가 되던 해 뒤늦게 신학교에 진학한 늦깎이 목사였다.

박센터장이 신학교를 다닌 지 1년, 임하교회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고민이 컸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임하도에 가야 한다는 울림이 일었고, 그 마음 하나로 임하교회에 오게 됐다.

당시 교회는 25평 건물 한 채에 교인 5명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변변한 교육시설도 없이 낙후된 임하도였다. 그래서 임하도에 온지 2주가 지난 후 봄방학 학습지도를 시작했다.

박센터장이 일찍부터 공부방에 관심을 가진 것은 큰 딸이 신안의 한 교회에서 공부방을 다녔기 때문이다. 신안 화의면에서 자생적으로 운영되던 공부방은 딸의 유일한 학원이자 놀이터였다. 그리고 그 때 받은 헌신적인 사랑을 임하도 아이들에게 나눌 차례였다.

목포대 2학년이던 딸은 함께 임하도에 건너와 학습지도를 도왔다. 또 교회 반주자이기도 했던 딸은 주말이면 아이들에게 피아노 수업도 열었단다.

“큰딸은 공부방 혜택을 직접 누렸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마음 깊이 느꼈어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임하도 아이들을 돌봤죠. 자신이 받은 돌봄이, 또 다른 아이들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았으니까요”

임하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봄방학 학습지도를 해보니 공부방의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게 됐다. 하지만 인력이 없고 교회 재정도 어려웠던 때라 매일 공부방을 열기에는 형편이 어려웠다. 박센터장도 신학교를 다니면서 교회를 꾸려나가야 해 정신없을 정도였다.

방학에라도 있을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 지난 2000년 여름방학부터 방학 종일반을 운영을 시작했고, 지역아동센터로 법제화되기까지 꾸준히 운영하면서 지금의 임하지역아동센터가 됐다.

아이들의 특기를 찾아주고 싶어 지난 2002년 바이올린·첼로·플룻 등 7명의 아이들에게 관현악 레슨을 시작해 관현악단을 꾸렸다. 수강료를 교회에서 부담하고, 일주일에 두 번 직접 목포까지 데려가 강습을 받았다. 드럼·기타 등 일반악기 레슨도 시작해 당시 임하지역아동센터는 갖가지 음악소리로 넘쳐났다.

처음에는 몇 명의 임하도 아이들만 참여했었지만 점점 인근 지역의 아이들까지 오게 되면서 지난 2004년 중·고등부 30여명, 아동부 30여명이 될 정도였다.

2004년이 되자 정부에서 공부방을 장려하기 시작했고, 9월부터 5개월간 한 달에 67만 2000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정원이 40명인 임하지역아동센터에 520만원의 지원비가 나온다.

올해부터 급식비가 전액 지원되면서 항생제가 많이 들어가는 소세지 등의 가공식품은 친환경 제품으로 구매하고 있다. 아이들 먹거리부터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다. 예전에는 아이들 밥 주기에도 허덕여 교인들이 봉사활동을 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란다.

“520만원이면 굉장히 많죠? 하지만 막상 운영해보면 빠듯해요. 규정상 센터장 1명과 생활복지사 2명이 의무인데다가, 아이들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차 기름값만 해도 한 달에 40만원가량 나와요. 프로그램비에 운영비 등을 생각하면 생활복지사들 월급을 올려주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죠”

현재 월급 130만원을 지급하지만, 더 오래 일해도 올려줄 수 없는 상황이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확보해야 줄 수 있는 것이기에 묵묵히 아이들을 돌볼 뿐이라고.

공부방에서 받은 사랑 임하도에 풀어
다양한 길 알려주고 싶지만 인력난 심해

더 큰 문제는 인력난이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임하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오래 일할 사람을 구하고 싶었지만, 문내면에서 조차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교회를 통해 자격이 있는 전도사들을 데려왔다. 대학원까지 다녀 아이들에게 수학·영어를 기가 막히게 가르친단다. 아이들도 학원보다 낫다며 훨씬 좋아한다고.

하지만 박센터장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으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무의미해질 뿐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체험이나 운동 등을 통해 마음껏 놀게 해주니 아이들도 공부할 땐 공부를 한단다. 즐길거리를 제공하니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모든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도록 4000만원을 들여 400평의 땅을 구입해 축구장을 만들었다. 탁구장도 설치했고, 농구 골대도 세울 계획이다. 함께 뛰놀던 기억에 대학생이 된 아이들도 주말이면 내려와 봉사활동을 자처한다.

“저도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많이 혼냈어요. 제 자식들에게도 그랬죠. 하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니 어릴 때는 성적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 게 아니더라고요. 죽어도 공부를 안 하던 제 아들이 실용음악학원을 차려 꿈을 찾는 걸 보고 아이들마다 각자의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고 관심을 갖는 게 다르다 보니 서로 이끌어주고 가르쳐주며 돈독해진단다. 다툴 때도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코를 씩씩 불며 함께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또 올해는 전라남도 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저녁 9시까지 야간돌봄을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 중학생들이다. 저녁 먹고 함께 운동하는 것이 평소 일과다보니 아이들은 밤이면 요즘 아이들이 푹 빠져있어 문제라는 게임을 할 시간도 없이 잠에 빠져든단다.

놀 때는 화끈하게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에 전념해야한다는 박 센터장은 아이들 특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베트남어 수업도 마련했다. 베트남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난데다가 다문화가정도 많아져 미래에 도움이 될 거란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방황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지난해 여름 반에서 29등을 하더군요. 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열심히 붙잡고 달래니 아이도 점점 맘을 열었고 중간고사 16등, 기말은 6등을 하더라고요. 성적이 행복을 가르는 게 아니라 그만큼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었다는 거죠. 아이의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꿈을 찾아줄 수 있는 아동·청소년 복지가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는 박 센터장. 그의 바람이 이뤄질 때까지 임하지역아동센터는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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