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 샘물교회는 오늘도 아이들 웃음소리에 떠들썩하다. 작은 독서지도교실에서부터 시작된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다. 정원 48명으로 읍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는 지난 2004년 2월 인천에서 해남으로 내려온 이호군(47)목사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그는 인천에서도 공부방을 운영했었고, 아내가 어린이 선교유치원을 10년간 운영했었기에 아이들 돌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목사 부부는 해남에 내려와 지역에 적응해갈수록 해남읍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부부는 공부방 대신 5~6명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 3개월 코스로 독서지도교실을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읍내에 공부방이 필요한지 아닌지조차 모른 채 공부방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독서지도교실을 운영하다보니 한 아이가 매번 하교 후 바로 교회로 찾아와 시간을 보냈어요. 그냥 둘 수는 없어 간식도 주고, 이야기를 나눴죠. 집에 가도 할머니 혼자만 계시는데다가 오후가 되면 나가셔서 교회를 일찍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니 해남에도 공부방이 필요하구나 싶더라고요”

교회의 규모가 작고 건물도 짓기 전이어서 매일 아이들을 돌보기에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하지만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야 할 일로 여기고 공부방을 열었다.

공간이 없어 교회 예배당 의자를 밀어놓고 학습지도를 하거나 사택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자원봉사자가 없어 직접 돌보거나 교인들의 도움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인천에서는 지역아동센터가 법제화되기 전에도 공부방에 급식비 등을 지원해줬어요. 지자체가 재정적으로 풍족하면 아이들 복지에 더 관심을 쏟는다는 걸 느꼈죠. 농촌지역의 아이들도 많은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더라고요”

대학생들이 많은 도시에 비해 해남은 자원봉사를 올만한 학생도 없었고, 일반 봉사자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아동복지나 사회환원에 관심을 갖는 큰 기업들이 없어 후원을 받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다 폐지줍기를 시작했다. 책을 담았던 박스를 한가득 길에 내놓은 후 지나가던 할아버지의 스쳐지나가듯 말했던 한 문장 때문이었다. “이거 고물상에 갖다 팔면 아이들 아이스크림정도는 사줄 수 있는데”

그 길로 고물상에 찾아가 폐지를 팔고 5000원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해줄 수 있게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폐지를 주워 생계유지하는 노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새벽이나 밤에만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교인들이 집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폐지줍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까지 폐지줍기를 해왔는데, 10여 년간 번 돈이 1억 7000만원이란다. 이 돈으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돌보고, 무료급식을 하며 사회에 환원했다고.

아이들 돌봄 위해 폐지주워
나눔의 기쁨 이해하는 사람 되길

“읍은 면단위와는 달라요. 학원이 있다 보니 지역아동센터에 가는 아이들은 수급자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간다는 인식이 박히기 쉽죠. 하지만 지역아동센터의 진정한 역할은 아이들이 지역의 재산이라는 걸 인지하게끔 만들어주는 거에요“

일반 맞벌이 가정,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어우러져 사는 것이 사회이고, 이 가정의 아이들이 융합되어 더 큰 세상과 가치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역아동센터는 학교와 달리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한 선생님과 오래 유대감을 쌓기 때문에 환경과 나이를 넘어선 아이들만의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지역아동센터만의 매력이다. 현재의 지역아동센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우선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사회에서 분리되는 느낌을 줄 수도 있어 민감하단다.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 48명의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생이다. 읍내 특성상 중학생이 되면 학원을 많이 다니게 돼 지역아동센터에 올 수 있는 시간이 적단다.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찾아와 함께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

“중·고등학생처럼 청소년들까지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학교에서 자율학습,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청소년들의 흔한 일과이죠. 관심 있는 아이들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아카데미나 동아리 활동들을 해요. 해남군이 이전보다 청소년 동아리를 활성화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아직까지는 부족한 편이죠”

다양한 아이들과 다양한 경험을 골고루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의 프로그램은 알뜰살뜰하게 짜여 있다. 월요일 컬러비즈나 골판지 공예 등의 만들기 수업, 화요일은 음악 수업, 수요일은 미술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지도하고 연극을 배우는 예술 수업, 목요일은 다양한 기구와 도구를 활용한 체육수업, 금요일은 주산 수업을 진행했고 다른 지역으로 캠프를 떠나기도 했다.

기본적인 학습지도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을 골고루 접할 수 있게 해 아이가 즐거워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도 한다. 대표적인 건 독거 어르신 생일잔치. 읍사무소에서 추천받은 독거어르신들을 한 달에 한 명씩 찾아뵙고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와 음식을 나눠 먹는다. 자식이 없거나 오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을 만나며 아이들도 나눔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된단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도 부모가 아동교육이나 복지쪽의 전공자가 아닌 이상 꼼꼼히 챙기기 힘든 부분이 많다. 여러 방면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이 많아져야 하지만 지역아동센터에서 부모교육까지 신경쓸만한 여력이 없다.

컴퓨터를 붙잡고 서류작업을 하는 시간이 길어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정확하고 꼼꼼히 기록해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적은 월급과 한정된 인력으로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서류작업은 없애고 최대한 간소화했으면 하는 게 이 목사의 바람이다.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의 이름처럼 꿈을 좇는 아이들의 행복에 든든한 지지자가 되길 자처한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그들이 있어 아이들은 행복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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