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 ․ 묵상 ․ 청빈
-고정희(1948~1991)시인 생각

이지엽

해남 물가의 집 남정헌(南汀軒)에서 본
고행 ․ 묵상 ․ 청빈
나를 늘 따라 다니네
생각해보면 한 가지도 실행하기 힘든데
어떻게 이 큰 셋을
머리에 이고 살았을까

하루 열 시간 넘는 강의를 할 때도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밤새 원고를 쓸 때도
어느 한 가지 제대로 못하는 나를 채찍질 하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그래야하는데 늘 한쪽 발은
죄의 구덩이에 빠져있네

하늘처럼 자유롭고자 했는 자유의 시혼
목숨처럼 사랑한 <또 하나의 문화>
남도가락과 씻김굿으로 빚어낸 5 ․ 18

지리산 뱀사골 실족은
신이 그녀를 너무 사랑한 것
시의 태반 시의 어머니 지리산이
그만 그 품에 안아버린 것

그녀 누운 무덤가
작은 저수지
은빛햇살 욜랑욜랑 거리겠고
송정리 보리밭 무장무장 푸르게 차오르것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22


<시작메모>
해남 삼산면에서 태어나 자유를 향한 시혼을 뜨겁게 불사른 고정희 시인을 생각한다. 그녀의 생가에 들어서면 어둠속에서도 빛나던 고행, 묵상, 청빈. 이 큰 말씀에 늘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너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진 시대, 이 말씀을 다 잊고 우리는 눈앞의 것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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