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지역아동센터는 배우 문근영의 기부로 전국에 회자된 유명한 센터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근영의 유명세보다 더 빛나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땅끝지역아동센터는 지난 2002년 미국에서 건너온 김헬렌 선교사가 영어공부를 가르쳤던 것에서 시작됐다. 갈 곳이 없던 송지 아이들 16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부방을 찾았단다.

1년 후 김헬렌 선교사가 건강 악화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자원봉사를 하던 배요섭 목사, 김혜원 시설장이 아이들을 돌보게 됐다. 25평의 좁은 공부방은 시작한지 6개월도 안돼 40여명의 아이들로 가득 찼다.

영어와 한문을 가르쳐주고 저녁이 되면 집에 데려다주던 어느 날, 부부는 아이들이 늦게 집에 돌아가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일이 부모와 통화를 해보니 일에 치어 아이를 돌보지 못하거나, 조손가정 등 제대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부부는 학습지도보다 부모의 마음으로 돌보기 시작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랑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방치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과 열악한 시설에서 함께 서로를 보듬길 2년. 지난 2005년 한 신문에 보도되면서 문근영씨 부모님과 연을 맺게 됐다. 후원을 받아 지금의 위치로 옮길 수 있었고, 문근영의 도움을 받은 땅과 건물은 NGO단체 굿피플이 담당하고 있다.

이후 지난 2006년 송지면에서 지역아동센터를 권유하고 송지 43개 마을 이장이 응원하면서 본격적인 땅끝지역아동센터가 만들어졌다. 막상 지역아동센터를 시작하고 나니 운영은 쉽지 않았다. 요구하는 조건과 목표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는 국가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과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이 단순히 학습지도와 체험에 있는 게 아니라 가정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혜원 시설장은 “아이들이 가정환경이나 형편이 좋지 않아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더라도, 자신의 가정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부모님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면 부모도 변할 수 있죠. 가정이 살아나는거에요”라고 말했다.

아이들 보호에도 신경쓰다보니 지난 2009년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인 ‘천사의 집’을 시작하게 됐다. 최대 7명까지 보호가 가능한 그룹홈이지만, 워낙 입소요청이 많아 올해 증축을 하기로 했단다.

아이들을 돌본지 10여년이 넘다보니 땅끝지역아동센터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생이 됐다. 배요섭 목사가 자신의 가족에게 소개해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아낌없이 밀어주고, 센터를 졸업한 후에도 끊임없이 교류하며 연을 맺어가고 있다. 정원은 49명이지만 이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보이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들이 모여 만든 또 다른 가정
‘나눔’을 배우며 자존감 키워나가

졸업한 아이들은 방학이면 다시 땅끝지역아동센터에 돌아와 동생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이야기 하고, 또 서로 치유시킨다. 일종의 자가치료 시스템이다.

또 아이들이 잘하는 분야를 찾아내 스스로가 선생님이 되도록 한단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님이 되어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다. 김 시설장은 아이들 소풍 때 김밥을 한 줄을 싸도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넉넉히 챙겨준단다.

아이들이 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니 자발적으로 기부도 하고 있다. 땅끝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교통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기부하는 일화는 전국적으로 유명할 정도다. 지난해에는 기부금액이 50만원을 넘었다.

배요섭 목사는 “특별한 교육은 없어요.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고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교육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같이 생활하며 보여주는거에요”라며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내 행동을 같게 하고, 내 자식일처럼 나서고, 진심으로 소통한다면 어느 순간 신뢰는 쌓이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죠”라고 말했다.

부부는 가정을 살리기 위해 만든 또 다른 가정이 땅끝지역아동센터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경제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한다. 부모가 건강해지면 아이들도 덩달아 건강해지는 걸 보고 돕지 않을 수가 없단다.

아이들의 상처에 많이 울고 보듬다보면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들에게서 받는 사랑이 더욱 커 꿋꿋이 버텨내고 있다.

소소한 행복도 많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이 8월 16일 선수단과 함께 입장할 아이들 중 땅끝지역아동센터 모 군이 뽑혔다. 전 세계에서 11명을 뽑는데다가 한국에서만 3000명이 지원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었다. 지난 7일에는 영국 전역에 방영할 다큐멘터리도 찍어 갔단다.

김 시설장은 “제 자식처럼 키운 아이들이 만든 또 하나의 가정이에요. 가정을 가진 아이들이 만든 더 큰 가정이죠. 아이들은 여기서 배려를 배우고, 사랑을 배워요. 언제든지 우릴 떠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준만큼 무언가 받길 바라지 않는다는 배요섭·김혜원 부부.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크게 돌려받는다며 오늘도 49명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