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하루종일 끌어도 1만원 남짓
 

“요즘은 오토바이나 차 타고 폐지나 고물 줍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은 많이 못 주워”

평동리에 산다는 모 할머니(77)는 폐지를 주우러 다닌 지 3년차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을 빼곤 매일 5시간씩 폐지를 줍는다. 리어카가 없어 고물상에서 빌린 리어카를 끌고 나온다.

도로 구석을 살피던 할머니가 한 상가 앞에서 리어카를 세우고 다가간다. 상가에서 내놓은 박스를 담으려는 것이다.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박스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박스에 고인 물 때문에 벌레가 나오고 악취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캔이나 병도 모아 리어카 한 켠에 싣는다. 간혹 비닐봉투에 캔을 가지런히 정리해 내놓은 것을 주울 때면 기분이 좋다. 할머니는 주운 고물이 떨어지지 않게 재차 확인한 후 리어카를 끈다.

할머니는 매일 평동리에서 고도리까지 상가들을 돌며 폐지 등을 수집한다. 매번 방문하는 구역이 있다 보니 한 상가에서는 미리 박스를 모아놨다가 할머니에게 건네기도 한다. 길가에 놓인 폐지들은 다 주워가거나 청소하기 때문에 상가 주변을 기웃거려야 폐지를 얻을 수 있다.

독거노인인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돈은 월 10만원 정도. 수원과 서울에서 사는 두 아들이 있지만 1년에 한 차례도 내려오지 않을 때가 있다. 막내아들이 매달 20만원씩 보내주지만 당뇨가 있는 할머니는 다달이 들어가는 약값만 15만원이 넘는다.

할머니가 한 달 동안 쓰는 전기세와 수도세, 전화비를 다 합쳐도 3만원 남짓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 돈조차 부담스럽다. 훨씬 돈을 많이 주는 밭일을 하러 가고 싶지만 아픈 몸인데다가 멀미가 심해 차를 탈 수 없어 밭일은 하지 못한다.

그나마 폐지 줍는 일은 밑천이 들지 않아 할머니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왜 폐지를 가져 가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서러워도 이해하려 한단다.

할머니가 자신의 몸무게 두 배를 훌쩍 넘는 리어카를 끌고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 받는 돈은 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차를 갖고 고물을 수집하는 노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 할아버지(78)는 해남 고물상 시세가 다 비슷하지만 그 중에서 단 돈 10원이라도 더 주는 곳을 알아보고 그 곳으로 향한다고 말했다.

읍내 폐지 가격은 보통 1kg에 80원 정도. 며칠 걸려 폐지를 모아도 4만원을 받는다. 철캔은 1kg에 100원 정도이고, 알루미늄캔은 1kg에 850원정도지만 무게가 가벼워 아주 많이 모아야 중량을 채울 수 있다. 이렇게 모은 고물들을 가져다 팔아도 절반은 기름값으로 나간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밭일도 써주지 않아 폐지를 줍게 된지 6년째다. 그나마 젊었을 때 벌어놓은 돈으로 산 트럭이 있어 리어카 끄는 노인보단 수월하단다. 노인일자리에 자리가 있으면 하고 싶지만 순번대로 돌아가며 채용하는데다가 받는 돈도 적어 폐지를 줍는다.

매년 고물값이 계속 떨어지지만 하던 일이라 계속 한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모은 폐지와 고물을 사는 고물상들도 최근 고물 시세에 혀를 내두른다. 고물 시세가 떨어지다 보니 이윤이 남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물건을 파는 사람도 줄었다는 것이다.

모 고물상은 “올해 들어 고물 가격이 내려가기만 하고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며 “폐지로는 수지가 안 맞고 그나마 고철장사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다른 업주는 “판로는 있는 편이지만 최근 고물 시세가 내려가 화물차 단위로 움직이는 분들이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팔러 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폐지나 캔, 고철이나 비료포대 등 고물상에서 사들이는 물품 전반이 전년도에 비해 시세가 떨어진 상황이다. 현재 고철 시세는 보통 1kg에 300원 가량. 모 업주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에서 많은 양의 고물을 수입해 반짝 경기가 좋았는데, 올림픽 이후에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답했다.

또 다른 고물상은 “예전엔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고물들이나 철재자재 등을 수입하면서 가장 말단인 지역 고물상도 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중국도 동남아에 덤핑으로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역수입한 고물이 더 저렴할 때가 있어 지역 고물상에서도 앞으로의 국제 정세가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또 고물상에서 TV나 냉장고 등 취급할 수 있는 고물도 제한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기물관리법 14조3항에 따르면 생활폐기물 중 폐지나 고철 등 정해진 고물만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가전을 싣고 오는 노인들을 외면할 수 없어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모 고물상은 “예전에는 선풍기만 해도 품귀현상이 있었을 정도지만 지금은 누가 사가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는 ”요즘 고물상은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기 때문에 부담이 늘었다“며 ”국가에서 고물상의 입지 조건까지 제한하면서 외곽으로 내몰리는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전국고물상연합회가 창립돼 고물상의 미래를 의논했을 정도로 고물상의 전망은 어둡다는 것이다.

고물상은 폐지 줍는 노인들과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연계되어 있는 업종이다. 또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자원으로 탈바꿈시켜 환경문제와 자원재생을 실천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군민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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