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 아래

이지엽

뽕나무 하면 생각나는 일이 많지만요.

하굣길에 뒤가 마려워 후닥닥 뛰어든 뽕밭
웃뜸 영심이 고 쪼그만 계집애
옴시락거리며 먼저 일 보고 있던
다른 무엇보다 고 살끈한 엉덩이 떠오르지만요
몰라몰라 그때 마침 노을빛 콩당콩콩
방아 몇 섬 찧었다던가
쏴하니 개밥바라기 시린 살점 두엇 떠올랐던가
달싹이다 끝내 아무 말 않고 팽 돌아선 고, 고, 고
짜글짜글한 오디 입술 생각나지만요

그 후로 내 가슴 뽕밭이 하두 환해 와서 환해는 와서……


<시작메모>
작은 아버님이 사시던 마산 금자리에서 효교리로 넘어 오는 언덕배기에 뽕나무 밭이 있었다. 가로질러 잠사(蠶舍)도 있었는데 희고 길다란 그 건물은 다분히 이국풍이었다.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가랑비 빗소리처럼 아련하게 들리곤 했다. 서울 종로 5가 광장 시장을 지나다 오디를 한 다라 쌓아놓고 파는 걸 보니 그때 생각이 알큰하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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