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으로 우는 꽃

이지엽

1
동백꽃에는
우항리 남쪽 바닷가
백악기쯤의 큰 새들 울음이 산다
바다를 울리고 우주를 울린 큰 울음이
잎잎마다 반짝 거린다
저 은백에로의 놀라운 투신
햇살은 잎잎마다 죽어
초록의 생생한 눈짓으로
찬란하게 다시 태어난다

2
동백꽃은 온몸으로 우는 꽃
울다 뚝뚝 떨어져서 다시 우는 꽃
차가운 빗속에서 다시 한 번 피는 꽃
모든 꽃 진 자리 하얀 눈 속에서
하얀 눈을 먹고 붉게붉게 피는 꽃
남도 땅 끄트머리 불새가 날아드는
해남에는 지천으로 피는 꽃
아아 바닷가 돌 위에서 피는 꽃!

3
아이들이 서로 부등켜안고 있다
상처의 가슴들을 둥글게 말아 쥐고
울퉁불퉁 서로 손을 붙잡고 쓰다듬고 있다
벌도 나비도 없이 꽃은 피었다 지더라도
낙목한천 바라본 멍한 자리에
곧 올거야 마냥 기다리고 있다
착한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다


<시작메모>
동백나무는 상처를 받으면 진액을 내서 그 상처를 둥글게 감싼다. 상처를 감싸느라 둥글게 둥글게 말아쥔 모습에서 참사랑을 본다. 떨어져 죽어서도 다시 피는 꽃! 다시 피어라. 다시피어라…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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