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다에 보내는 참회록

이지엽

차가운 봄바다 어둠 속에서 간절하게 빛을 기다리는
학생들을 불러봅니다
“희망 잃지마” “얼굴보자, 꼭” “조금 만 참아” “보고 싶어” “제발 돌아와”
안산 단원고 아이들의 간절한 촛불 기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루 이틀 사흘 까맣게 속이 타들어가도록
냉골파도만 이는 저 먼바다
바라보다 이름 부르다 답답한 가슴 쾅쾅 내리치며 실신해도
나흘 닷새 엿새 결국 단 하나의 기적도 오지 않는 황량한 팽목항
오천만 모두의 가슴 이렇게 허탈한 적 있었던가요?
무너지는 산맥 같은 슬픔입니다
뿌리 채 흔들리는 섬 같은 막막함입니다
촛불과 촛불이 띠를 이루어 밤바다 물결처럼 어룽집니다
십자가에 달리셔 죽으셨다 다시 부활하신 그 모습으로
한 사람만이라도 기적을 주소서
두 사람 만이라도 돌아오게 해 주소서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가 삼천리를 울립니다
이들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한다 잘못했다 용서해주세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착한 양떼였는데
우리 얼마나 관심을 가졌습니까?
왕따를 당하고 자살을 한 아이를 위해
시험에 좌절하고 하고 목숨 끊은 아이들 위해
물질과 물욕에 덧칠해진 욕망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길 잃고 헤매는 이 땅 어둔 골목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알량한 자존심만 지키다 끝까지 외면한 죄, 어찌하면 좋습니까.
혼자 살기 바쁘다고 이웃 모두 팽개친 죄, 어찌하면 좋습니까.
우리의 이 큰 잘못 무엇으로 씻을 수 있습니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얼마나 외롭고 힘듭니까?
우리의 몸도 거기 나란히 눕힙니다
분노도 아픔도 죄도 다 눕힙니다
“사랑해” “엄마랑 밥먹자” "꼭 다시 돌아와 웃으며 수업하자"
무사 귀환 메시지를 보내고 촛불로 올리는 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것뿐이라는 게
기가 막히지만 그래도 사랑의 촛불 간절히 켜듭니다

 

<시작메모>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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