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두레 밥상

이지엽

동그란 바구니 가장자리로
빨래를 빙 걸쳐놓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두레밥상 같다
남자란 뿌리가 실해야 혀
아버지 양말이 한 말씀 하신다
예 예 건성인 아들 런닝구
나풀거리며 벌써 발이 뛰어 나간다
아가 바뻐도 밥은 꼭 챙겨 묵거라
할머니 고쟁이가 바람에 펄럭대며 또 지청구다
손수건 말아 싼 꼬깃꼬깃한 지폐 감추던
속속곳 주머니가 꽃무늬 팬티를 보고 입을 벌린다
땡땡이 물무늬면 어떻고 쫄쫄한 레깅스면 어쩌랴

한 가족의 내력이 죄다 나와
볕을 쬐고 있다
봄이 꼬득꼬득해지고 있다


<시작메모>
울멍울멍한 바구니에 빨래들이 널려 있습니다. 런닝구와 팬티와 양말과 속옷가지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은 모습이 정답기 그지없습니다. 둥근 두레밥상처럼 흥겨움이 가득합니다. 지나가는 봄, 늘 이만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