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아홉 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시작메모>

IMF 긴급 구제금융으로 옥죄임하던 광주여대 시절 이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하자 반응이 뜨거웠다.

한양대 정민교수가 좋다고 작품 전문을 붓글씨로 보내오더니 서울대 장경렬 교수가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에서 복사꽃 핀 봄날에 비유해 흥성스러운 우리 시단이 열렸다고 극찬을 했다. <한국시조작품상>도 받았고 인터넷에 답글이 몇 백 개가 달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니 내 작품 중에 이처럼 호사를 누린 것도 없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고향을 이렇게라도 알릴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이 작품의 무대는 북평면 차경리.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이 수녀의 노모는 세상을 뜨셨다. 수녀의 언니가 함박골 큰기왓집이라는 민박촌을 열었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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