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마을이니까 모두 행복하시겠다고 묻는 관광객들이 있어요. 모든 주민들이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을 만들고 싶지요”삼산면 매정리 이인식(45)이장은 젊은 나이에도 이장을 맡은지 벌써 4년차다. 지난 2011년 청년회장이었던 그는 전 이장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임시직으로 첫 이장을 맡았고, 이후 젊은 사람에게 맡겨보자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올해까지 이어 하게 됐단다.4년차가 됐어도 이장은 늘 바쁘다. 매정리가 하고 있는 사업들이 많은 탓이다. 지난 2005년 두륜산버섯정보화마을을 시작으로 녹색농촌체험마을, 행복마을사
대둔산자락 아래 펼쳐진 현산면 조산리는 돌담들과 마을 어귀 벽화가 반겨주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조산리의 살아있는 사랑방을 자처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올해 새로 취임한 이봉현(72)이장이다.그는 고향 조산리를 떠나 도시 생활을 하다 지난 1984년에 귀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지난 1986년부터 3년간 이장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선배 한 분이 ‘자네가 여기에서 자랐고 뼈를 만들고 살을 붙였으니, 이제 마을에 보답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이장을 하게 됐지요. 올해도 그 생각으로 이장을 해요”이장에게 조산리는 인심 좋고
문내면 예락리 배동열(45)이장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세발나물, 110년 역사의 예락공소 등 자랑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란다. 해남군에서 잘 사는 마을을 고르라면 예락리도 빠지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우리 마을은 세발나물로 떴어. 대한민국에 예락리를 톡톡히 알렸지. 세발나물을 통해서 우리 예락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해요”마을 주민 김경식씨로부터 시작된 세발나물 재배는 참여 농가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원하는 마을공동소득창출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활기를 띄었다.
오밀조밀 쌓은 돌담이 인상적인 계곡면 강절리는 떨어진 쓰레기를 찾기 힘든 마을이다. 마을 미관에 특히 신경 쓰는 임경운(78)이장이 있기 때문이다.임이장은 지난 1978년 도시로 떠나 삶을 꾸렸다가 20여년 만에 고향 강절리로 되돌아왔다. 그 후 임이장이 68세가 되던 해, 2년만 이장을 맡아달라던 주민들의 부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장을 하게 됐다.거리가 반듯하게 정돈된 도시에서 살다 강절리에 돌아와 보니 임이장은 마을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가 가장 신경 쓰였단다. 이장을 맡기 전에도 마을 주민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3000여명의 화합을 책임지는 무게는 어느 정도나 될까. 구교리 김상철(71)이장은 구교리의 약 800세대, 주민수 3000여명을 이끌어온 지 벌써 16년차다.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구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기에 마을 일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김이장이 처음 이장을 맡았던 이유는 마을자금때문이었다. 마을 행사나 대소사가 있어도 이를 치를만한 자금이 없었던 것. 김이장은 첫 이장 임기동안 고깔을 쓰고 꽹과리를 치며 집집마다 희사금을 걷으러 다녔다.그렇게 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600만원 중 200만원으로 마을 회관 방을 새로 지
북일면 월성리 손동수(47)이장은 젊은 나이에도 주민들을 위해 발로 뛴 지 벌써 9년차인 똑소리나는 이장이다.월성리는 63세대, 주민 수 171명인 마을이다. 그 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들이 마을인구의 65%를 차지한다. 북일면 평균이 35~40%비율인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고령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월성리에서는 북일면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경로잔치를 열고 있다. 작년에 20주년 행사를 마쳤단다.손이장도 마을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주민간의 화합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마을 발전을 위해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실 있는 마을이
옥천면 신죽리 주민들에겐 정채진(66)이장의 손길이 구석구석까지 미친다. 정이장은 지난 2001~2003년에 이장을 역임하고, 주민들의 요구에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장을 다시 맡았다. 주민들의 신임이 보장된 이장이다.신죽리는 37세대가 살고 있는 마을로, 70여명의 주민들 대다수가 부모세대부터 대를 이어 살아온 토박이들이다. 예전에는 80세대가 넘게 살았었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전부 객지로 떠나거나 노령으로 돌아가셔서 마을 주민수가 많이 줄었단다.마을회관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주민들은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 많다. 60대
해남, 완도, 강진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인 남창리에는 주민과 행정을 연결시켜주는 부지런한 이판수(67)이장이 있다.세대수 280세대, 주민수 650여명인 남창리는 시골 마을이라기엔 굉장히 큰 마을이다. 이이장은 이곳 남창리에서 태어나 객지생활 6년을 제외하고 쭉 살아왔다. 지난해 이장을 맡아 능숙하게 해내고 있는데, 10여 년 전인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장을 했던 경험 덕분이다.현재 남창리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공간도 이장이 발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예전의 남창장은 거리장이었다. 작은 공간이 있었지만 턱없이
황산면 관두리의 이장, 김재남(53)이장은 이장업무를 계단처럼 하나하나 밟아가는 계획적인 이장이다.김이장은 매년 주민들에게 약속을 한다. 한 해 동안 어떤 목표로 마을을 이끌어나갈지에 대한 약속이다. “모름지기 이장이라면 주민들과 약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급한 문제점을 파악한 후 테마를 정해 이뤄내겠다고 약속하는거지요. 그 후엔 스스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연스레 일하게 됩디다.”지난 2011년에는 공터에 쓰레기를 치우고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를 약속했다. 김이장은 주민들과 약 1000평의 공․휴면지에 해바라기를
늙은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 송지면 동현리에는 듬직한 젊은이장, 박금령(57)이장이 있다.박이장은 이장을 맡은 지 올해로 2년 차 초보이장이지만 마을을 위해 나서는 모습은 여느 이장만큼 노련해 보인다. 동현리에서 태어나 마을반장, 청년회 등의 활동을 통해 세대수 65호, 170여명 주민들의 내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만호바다를 끼고 평화로이 자리 잡은 동현리는 담장 곳곳에 벽화가 그려진 풍경이 눈에 띈다. 2011년 벽화봉사단체에서 한 번, 그 이후 다시 벽화작업을 해 마을 내부를 산뜻하게 단장했다.마을에 유일한 슈퍼는 과자
경로효친에 지극정성인 미야리에는 마을봉사에 지극정성인 용종희(76)이장이 있다.고향 미야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용이장은 2000년부터 14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장을 해온 베테랑 이장이다. 용이장은 교회장로로 30년 간 봉사하고 원로가 된 뒤 “신께 이만큼 봉사했으면 신도 정성을 알아줄 것이다. 이제는 마을에 봉사를 해야 하지 않나”싶어 이장노릇을 자처했단다.미야리는 175세대 320여명이 살고 있을 정도로 제법 큰 마을이지만 마을 자산은 많지 않다. 하지만 경로효친에 있어서는 그 어떤 마을도 따라올 수 없는 풍족한 마을이다
월교리를 친환경농업마을로 키우고 싶다는 당찬 꿈을 꾸는 이장이 있다. 해남읍 월교리 이장인 이순운(43)씨다.이이장은 월교리에서 태어나 해남남고를 졸업한 후 도시에 정착했고 20년을 가구일에 종사했다. 하지만 2009년, 큰형님이 간경화 말기로 간이식이 필요해지면서 이이장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이이장은 큰형님께 자신의 간을 이식해드리고 귀향을 결정했다. 시골에서 태어났으니 귀향 전 마련한 땅 4000평에 농사를 지으면 굶어죽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서다.그렇게 고향에 내려온 지 5년차, 이이장은 처음 생각했던 건나물․건
“이장 할 만 하것소“라며 부러움을 사는 이장이 있다. 현산면 신방리 이옥균(58)이장이다. 신방리는 가구 수는 105호, 주민이 300명이나 되는 큰 마을이다.이이장은 4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신방리에서 태어나 23세부터 반장, 개발위원장 등 마을 일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해 마을 주민들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을 사정에 훤하다.신방리는 농사를 활발히 짓는다. 특히 대부분의 주민이 밭농사를 짓는데 이는 신방리의 특별한 차량 덕분이다. 바로 느타리버섯 물류차량이다.신방리 주민 일부가 1980년
부녀회장을 15년 해오다 여자이장으로 나선 문내면 동내마을 김백화(59)이장.김이장이 이장을 맡은 올해는 장흥에서 해남으로 시집와 동내마을에 산지 40년이 된 해다. 40년 세월동안 동내마을에는 빈 집이 늘어 현재 실 가구는 32호, 주민은 64명이다.그 중 65세 이상이신 분들이 40여명이 넘을 정도로 노령화된 마을로 변했고 주민들 대부분 특별한 수입원도 없다. 그래서 김이장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노인 복지다.군에서는 여자 이장이 있는 마을에게 일정 부분에 소득사업을 지원해주는데 김이장은 마을에 별다른 소득이 없어 소득사업 지
“여기에요 여기” 논 한가운데서 반갑게 뛰어오는 나도용(69)이장. 나이장을 만나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오른손 손등의 하얀 반창고였다. 반창고가 붙은 손은 퉁퉁 부은 채였다.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돕다가 양철에 조금 긁힌 것이 이렇게 부어올랐다고 한다. 괜찮으시냐고 묻자 나이장의 대답이 초연하다. “내 할 일 하다가 다친 건데 뭐…”나이장은 신안마을에서 태어난 후 직업군인 생활과 월남전 참전기간을 포함해 45년간 타지생활을 하다 다시 돌아와 올해 귀향 10년차다. 마을에 돌아왔을 당시에 노인 수가 굉장히 많아 놀
한때 꿈이 군에 들어가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는 서남기(77) 이장. 군인 대신 송석리 원덕마을의 장군으로 살고 있는 서이장을 만났다.마을 입구까지 기자를 마중 나온 서이장은 얇은 금테안경에 가지런한 치아가 인상적인 ‘어르신’이다. 서이장의 나이는 77세. ‘어르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다. 77세의 나이에도 서이장은 군내 최고령 이장으로 일하며 노익장을 과시중이다.전화로도 연신 취재할 것이 없다던 서이장은 “이렇게 가난한 마을 이장이 뭐 볼게 있다고 왔어?”라고 말하면서도 기자를 반겼다.송석리에는 15호 정도가 사는 원덕마
우리동네 우리이장 각 마을을 대표하는 이장, 사전에선 이장을 지방행정 구역인 리(里)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장의 역할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마을의 대표요, 마을공동체를 지켜가는 수호자, 주민들을 위한 봉사자요 일꾼, 행정의 최일선에 선 준공무원 등 없어서는 안 될 직책이다.농촌의 노령화로 인해 이장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시 되고 있다. 본지는 우리동네 우리이장이라는 기획연재를 통해 이장들의 역할 속에서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한다. 어르신들이 이장님이라 부르고, 이장님 오셨어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