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보면 낯선 단어들이 자막으로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로맨스’,‘싱크로율’,‘리즈시절’,‘그루브’ 등과 같은 외래어 또는 합성어가 있는가 하면 ‘멘붕 상태’,‘썸 탄다’,‘디스 하냐?’ 등 우리말과 외래어를 섞어놓은 것, 그리고 ‘심쿵’,‘광탈’,‘장미단추’ 등 어휘를 축약한 신조어들이 판을 친다. 주로 SNS상에서 이뤄지는 문자를 통해 주고받는 대화도 이처럼 극도로 함축된 낯선 단어들 투생이다.사정이 이쯤 되다보니 나이든 세대에서는 이들 젊은 세대 위주로 통용되는 이런 신조어들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인터넷의 발
해남군은 참으로 복된 땅이다.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차고도 넘쳐난다. 세 개의 반도로 된 해남 땅은 방조제 공사로 인해 바다가 메워지면서 넓은 간척지가 생겨났다. 삼 면이 바다로 된 천혜의 환경을 갖춘 해남은 힐링의 고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이러한 복토에 걸맞게 농수산업 1조원 시대를 열어가는 해남군은 어디를 가더라도 풍부한 먹거리와 맛집들이 있어 넉넉한 인심을 맛볼 수가 있다.그러나 이처럼 곳곳이 풍요로우면서도 정작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지역민들의 대체적
새 학기가 시작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 새 책을 펴들고 공부를 한다는 것.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이처럼 새 학기가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송지 서정초교 학생들이 맞는 감회는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21년 만에 분교에서 본교로 제자리를 찾았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때 폐교위기로까지 몰렸던 서정초교가 이처럼 기적적으로 부활한 것은 분명 교육의 힘으로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서정초교의 오늘은 학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을 교육하느냐에 따라 예상치 못한 놀라
우리나라에 명량(鳴梁)이 있다면 일본에는 나루토(鳴門) 해협이 있다. 두 곳 모두 조류가 빠르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울돌목’이라고도 불리는 명량은 문내면 학동리의 화원반도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있는 해협이다. 길이 약 1.5km이며 폭이 가장 짧은 곳은 약 300m 정도가 된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가장 짧으면서도 좁은 수로라서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썰물 때는 서해에서 남해 방향으로, 밀물 때는 남해에서 서해 방향으로 조류가 매우 빠르게 흐른다.사리 때의 유속이 약 11.5노트(시속 21km)로 동양 최대이다. 이를
해남에 왜군포로수용소가 있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문화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갖는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재지사학계는 물론 이곳을 답사하고 현장을 확인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에서 포로로 잡힌 왜군들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는 왜군포로수용소가 해남에 있었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1980년대 초반의 일로 그동안 근거가 된 자료에 의해 수용소 터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를 안내하는 표지판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는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정설로 굳어진 이른
도시인들에게 귀농, 또는 귀촌은 디지털 시대의 속도경쟁에서 벗어나 전원 속에서 삶을 재충전하는 ‘힐링’의 수단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대부분은 농촌에만 가면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이 저절로 치유되는 것으로 알았다. 오죽하면 ‘하다하다 안되면 농사나 짓지’하며 농사를 무슨 오락이나 취미생활쯤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 말은 농부에게 있어 얼마나 불경스러운 망발인가. 농촌에 가서 치열하게 살 궁리보다는 일종의 도피처쯤으로 생각한 철없는 도시인들의 귀농, 귀촌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귀농과 귀촌의 모호한 경계이
올해도 어느덧 달력 한 장으로 남았다. 예전 같으면 이맘때 빠지지 않는 것이 크리스마스 캐럴송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리에서 캐럴송이 자취를 감춘 것 같다. 사는 것이 팍팍해져서일까. 들뜬 분위기는커녕 짧아진 해만큼이나 모든 것이 차분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스마트해진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생활패턴이 개인 위주로 바뀌다보니 남을 배려한다 는 것이 언감생심인 세상이 돼버렸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어느 보험회사의 ‘당신에게 남은(가족과 함께 할)시간’이라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개인주의로 인한 소통의 단절SNS상에서
해남을 가리킬 때 으레 붙는 수식어가 있다. ‘땅끝’이다. 이처럼 해남과 땅끝은 어느새 불가분의 관계가 된지 오래다. 이렇다보니 ‘해남’이 아주 먼 곳이 돼 버렸다. 지리적인 거리감은 그렇다 쳐도 심리적으로도 멀게만 느껴진다. ‘땅끝’이라는 어딘가 막바지에 몰린 이미지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땅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역설하기도 하지만, 한번 굳어진 해남에 대한 외지인들의 인상은 여전히 ‘땅끝’일 뿐이다.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줘야 할 때 ‘땅끝’이라는 수식어 이전에는 해남 사람들을 ‘물감자(고구마)’, 또는 ‘풋나락’이라고 했
‘풍년(豊年)’이 반갑지 않은 세상이다. 풍년이 들어 풍년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격 폭락으로 농가가 울상을 짓는 ‘풍년의 역설(逆說)’ 때문이다. 풍년으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면 수요공급의 원칙상 가격은 하락한다. 그러나 농산물의 경우 공급에 비해 가격 하락 폭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따라서 풍년이 들면 농가 소득이 줄어들고, 흉년이 들면 오히려 소득이 늘어난다. ‘눈은 풍년이나 입은 흉년’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인심마저 고약해지기 쉽다. 더욱이 이러한 ‘풍년의 역설’이 최근 들어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데서 문제는 심
나폴레옹은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도 몰락의 길에서는 영웅도 황제도 아닌 ‘시간의 보복’을 두려워 한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흔히 ‘돌고 도는 인생’이라지만 도는 것은 운명일 뿐, 시간은 일회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가슴 뛰는 청춘의 시작점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으로 인생의 한 고비를 넘으려하고 있다. 이에 여러분과 같은 청춘의 시기를 보낸 한 사람으로서 감히 한마디를 보태려고 한다.성공은 꿈을 꾼 사람의 몫70년대 마
강원도 영월군은 지난 2009년 10월 관내 서면과 하동면의 명칭을 각각 ‘한반도면’과 ‘김삿갓면’으로 변경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명품 브랜드 사용으로 주민화합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변경한다는 취지였다. 한반도면은 영월 서강 줄기에 한반도 지형이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김삿갓면은 와석리에서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의 묘가 발견돼 외부에 널리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이런 영월군의 노력으로 김삿갓면은 2012년 강원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등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곳곳에 지명으로 남은 우수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청자(靑磁)’를 ‘청자’라 부르지도 못하고...”무슨 ‘홍길동전’의 아류(亞流)가 아니다. 다름 아닌 ‘해남 녹청자’얘기다. 왜 ‘해남 청자’ 앞에는 ‘녹’이라는 군더더기 접두사가 붙어 ‘녹청자’로 불리고 있는지. 혹자는 별걸 다 시비를 건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청자든 녹자든 그야말로 양단간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됐다. 더욱이 이웃 강진군은 고려청자를 내세워 ‘청자골 강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점을 비춰볼 때 학술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겠지만 초기 고려청자로 분류되는 녹청자 가마터가 해남지역에 대량으로 분포돼 있음에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며 우슬재를 넘은 것이 엊그제 일만 같은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불혹을 넘겨 우슬재를 넘었고. 다시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다시 우슬재로 돌아왔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그리고 쉰이라는 나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이 쉰은 중년이면서도 왠지 어중간한 나이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만큼 백세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인생 백년의 절반인 오십이 갖는 의미는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지천명을 살아가며“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나는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