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을 가리킬 때 으레 붙는 수식어가 있다. ‘땅끝’이다. 이처럼 해남과 땅끝은 어느새 불가분의 관계가 된지 오래다. 이렇다보니 ‘해남’이 아주 먼 곳이 돼 버렸다. 지리적인 거리감은 그렇다 쳐도 심리적으로도 멀게만 느껴진다. ‘땅끝’이라는 어딘가 막바지에 몰린 이미지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땅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역설하기도 하지만, 한번 굳어진 해남에 대한 외지인들의 인상은 여전히 ‘땅끝’일 뿐이다.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줘야 할 때 ‘땅끝’이라는 수식어 이전에는 해남 사람들을 ‘물감자(고구마)’, 또는 ‘풋나락’이라고 했
‘풍년(豊年)’이 반갑지 않은 세상이다. 풍년이 들어 풍년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격 폭락으로 농가가 울상을 짓는 ‘풍년의 역설(逆說)’ 때문이다. 풍년으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면 수요공급의 원칙상 가격은 하락한다. 그러나 농산물의 경우 공급에 비해 가격 하락 폭이 비정상적으로 크다. 따라서 풍년이 들면 농가 소득이 줄어들고, 흉년이 들면 오히려 소득이 늘어난다. ‘눈은 풍년이나 입은 흉년’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인심마저 고약해지기 쉽다. 더욱이 이러한 ‘풍년의 역설’이 최근 들어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데서 문제는 심
나폴레옹은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도 몰락의 길에서는 영웅도 황제도 아닌 ‘시간의 보복’을 두려워 한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흔히 ‘돌고 도는 인생’이라지만 도는 것은 운명일 뿐, 시간은 일회적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가슴 뛰는 청춘의 시작점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설렘으로 인생의 한 고비를 넘으려하고 있다. 이에 여러분과 같은 청춘의 시기를 보낸 한 사람으로서 감히 한마디를 보태려고 한다.성공은 꿈을 꾼 사람의 몫70년대 마
강원도 영월군은 지난 2009년 10월 관내 서면과 하동면의 명칭을 각각 ‘한반도면’과 ‘김삿갓면’으로 변경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명품 브랜드 사용으로 주민화합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변경한다는 취지였다. 한반도면은 영월 서강 줄기에 한반도 지형이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김삿갓면은 와석리에서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의 묘가 발견돼 외부에 널리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이런 영월군의 노력으로 김삿갓면은 2012년 강원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되는 등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곳곳에 지명으로 남은 우수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청자(靑磁)’를 ‘청자’라 부르지도 못하고...”무슨 ‘홍길동전’의 아류(亞流)가 아니다. 다름 아닌 ‘해남 녹청자’얘기다. 왜 ‘해남 청자’ 앞에는 ‘녹’이라는 군더더기 접두사가 붙어 ‘녹청자’로 불리고 있는지. 혹자는 별걸 다 시비를 건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청자든 녹자든 그야말로 양단간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됐다. 더욱이 이웃 강진군은 고려청자를 내세워 ‘청자골 강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점을 비춰볼 때 학술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겠지만 초기 고려청자로 분류되는 녹청자 가마터가 해남지역에 대량으로 분포돼 있음에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며 우슬재를 넘은 것이 엊그제 일만 같은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불혹을 넘겨 우슬재를 넘었고. 다시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다시 우슬재로 돌아왔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 그리고 쉰이라는 나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이 쉰은 중년이면서도 왠지 어중간한 나이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만큼 백세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인생 백년의 절반인 오십이 갖는 의미는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지천명을 살아가며“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나는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