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에 첫 눈이 내리던 날 조그만 시골길을 지나 옥천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쥬빌리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여느 아동센터와 달리 소박한 파란색 양철 대문이 맞아 주었다. 그곳에서 후덕한 인상의 정인열(53) 센터장을 만났다.“지적 장애가 있는 동네 아이를 돌보면서 마을에 있는 몇몇 아이들에게 기초 학습을 가르쳐 주는 공부방이 어느덧 29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가 됐다. “그 당시에 마을에 한 부모나 조손가정이 많아 돌봐주는 손길이 부족해 방과후 갈 곳이 없어 방임되다시피 한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며 이 아이들이 나중
문내면과 황산면 경계에 디딤돌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행정 구역상 문내에 속하지만 이곳을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황산에 살고 있었다.디딤돌 지역아동센터는 시작이 언제인지 모를 만큼 오래전부터 공부방으로 운영해오다 2005년 정식 인가를 받아 지역아동센터가 됐다. 윤은아(40) 센터장은 2010년 목회자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 지역아동센터를 맡아 운영해오고 있다. 광주에서 학교를 나오고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생활을 하던 윤 센터장은 처음 이곳이 낯설기만 했다. 심리 상담가로서 계속 아이들을 상대해 왔지만 시골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한
백호지역아동센터(센터장 백재현)는 항상 예절을 강조하며 아이들을 보살핀다. 백재현(50) 센터장은 1996년 체육관에 오는 아이들을 과제를 봐주며 공부방을 시작했다. 운동을 마치고 남아서 과제를 하는 아이를 가르쳐 주면서 체육관에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처음 몇 명으로 시작하던 공부방이 아이들이 늘면서 2004년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백 센터장은“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집에 가도 부모들이 일하고 있어 공부를 봐줄 만한 사람이 없다는 아이들 얘기에 과제를 봐주던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계
우수영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을 때 늦가을임을 알려주듯 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오는 배우식(56) 센터장은 친근한 중년의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밖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밝은 얼굴과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우수영지역아동센터는 지난 2002년 공부방에서 시작해서 2005년 정식 인가를 받아 지역아동센터로 운영해오고 있다. 정 센터장은 다른 곳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다 지난 2010년에 우수영으로 부임해오면서 우수영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게 됐다. 정 센
현산남부지역아동센터(대표 김 석, 이하 현산남부)를 방문하는 날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 아랑 곳 없이 아동센터안은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막 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로 실내는 분주했다. 아이들이 오자마자 하는 일은 손을 소독하고 영양제를 먹는 일이었다. 현산남부만의 규칙으로 아이들은 오자마자 손을 소독하고 영양제를 먹는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한 습관이다. 한사람의 습관은 품성이 되고 그것은 곧 운명이 된다는 명언이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건강을 스스로
서너 명의 어린 아이들만이 뛰어 놀 뿐 아이들이 많은 여느 곳과는 달리 센터는 차분하다. 학교가 끝난 아이들은 센터에 온 후 가방을 벗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시키는 이 없건만 스스로 책을 편다. 이곳은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을 만큼 아이들의 책 사랑이 남달랐다.“아동센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센터장을 맡게 된지 5개월이 됐다는 김수정(44) 센터장. 생활복지사로 근무하다 공석인 센터장의 제의를 받고 단번에 수락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저 아이들을 돌보고 즐겁게 놀아주던 복지사
“안녕하세요.”처음 본 아이들이 낯가림도 없이 꾸벅꾸벅 인사를 잘 한다. 차량운행을 나간 센터장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줄줄이 들어온 아이들이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정말 꾸밈없이 밝은 모습의 아이들이다.“애들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밝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어색해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급변하진 않지만 해가 지날수록 변화됨을 느낀다. 어느새 제집처럼 편안하게 느껴 토요일에도 나오면 안되는지 물을 정도다.”황산 하늘향기문고 아동센터 김세동(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다른 길을 찾아 내 인생을 만들어왔지만, 그 때 배우고 싶었던 걸 못한 기억이 참 아프더라고요. 해남의 아이들이 예전의 제 모습같은 상황이 되지 않았으면 싶었고, 주사랑 지역아동센터를 열게 됐습니다”주사랑지역아동센터의 대표이자 해남 지역아동센터연합회 회장인 김상록(58)대표. 건축업계에 33년 동안 매진하다 지난 2007년 주사랑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다. 바쁘게 일 해온 나날을 되돌아 본 어느 날, 이젠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그의 어릴 적 기억은 아이들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해요. 아이들이 모습, 말,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그걸 파고들면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환경을 알게 되죠. 그래서 꾸준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 갖는게 필요해요”마산 드리미 지역아동센터의 박정순(44)센터장은 보습학원을 운영했던 경력을 살려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녀가 지역아동센터를 알게 된 것은 결혼 후 학원을 쉬면서 산이지역아동센터에서 2개월간의 봉사활동을 하면서다.박 센터장은 아이들을 만난 후 고민 끝에 지난 2010년 남편의 고향인 마산에 드리미 지역아동센터를 열었다.운영을 시작한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부족해서 태어난 지 30일 된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죠. 하지만 이 일이 보람차다는 생각엔 변함없어요”지난 2007년 개소한 산이 상공지역아동센터는 해남 내 최연소 센터장이 있는 곳이다. 바로 일찍부터 아동복지에 꿈을 키워온 김지영(30)센터장이다.산이 초송리에서 태어나 산이초·중학교를 다닌 산이 토박이인 그녀. 학창시절부터 보육교사의 꿈을 키웠던 김 센터장은 대학 졸업 후 4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울고 웃는 시간을 보냈다.그러던
먹구름이 낀 아이들에게 새로운 하늘과 꿈이 열리길 바라며 시작된 현산 새하늘 지역아동센터. 이곳의 센터장 김창숙(43)씨는 지난 2001년 경기도 안산에서 귀농한 도시여인이었다.귀농을 시작할 당시 그녀의 눈에 비친 현산은 안타까운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논바닥 위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친구들끼리 뭉쳐 노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였다.대부분 농가 아이들이었다. 학교 숙제조차 해가지 않고 책을 읽지 않아도 농사일에 바쁜 보호자들은 신경쓸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기본적인 학습지도가 되지 않는 환경이 방치로 보였다. 예전만큼 아이들
“간혹 지역아동센터가 필요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을 받아요. 저는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지역아동센터가 없다면 지금 이 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내게 될까요?”엘로힘 지역아동센터는 북일의 유일한 지역아동센터다. 이곳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07년 10월 1일, 엄대중(45)센터장과 아내 이현화(43)씨가 북일 수동교회에 오게 되면서다.송지 금강리가 고향인 엄 센터장은 자신이 목사의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단다. 어릴 적부터 전도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동네 아이들 다 업어가며 키웠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던 화산 두란노지역아동센터 대표 윤재철(55)씨. 윤 씨는 아이들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나눠주고자 동갑내기 아내 박길순(55)씨에게 지역아동센터 설립을 제안했다.20년간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주율학습과 학생회 담당 봉사를 했던 박 씨는 묵묵히 윤 씨의 의견을 따랐다. 화산에는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느끼던 차였다. 더군다나 유별날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던 남편이었기에 뜻 깊은 일이라 생각했단다.“26살 때 서울에서 시집와 남편의 권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
2차선 다리 하나로 육지와 연결된 작은 마을 임하도. 이곳에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한 임하지역아동센터가 있다.임하지역아동센터는 박양문(56)센터장이 임하교회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신안이 고향인 박센터장은 지난 2000년 2월 7일 임하도에 발을 디뎠다. 당시 그는 아버지의 양식업을 돕다가 42세가 되던 해 뒤늦게 신학교에 진학한 늦깎이 목사였다.박센터장이 신학교를 다닌 지 1년, 임하교회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고민이 컸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임하도에 가야 한다는 울림이 일었고, 그 마음 하나로 임하교회에 오게 됐다.당시
해남읍 샘물교회는 오늘도 아이들 웃음소리에 떠들썩하다. 작은 독서지도교실에서부터 시작된 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다. 정원 48명으로 읍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꿈바라기 지역아동센터는 지난 2004년 2월 인천에서 해남으로 내려온 이호군(47)목사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그는 인천에서도 공부방을 운영했었고, 아내가 어린이 선교유치원을 10년간 운영했었기에 아이들 돌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이 목사 부부는 해남에 내려와 지역에 적응해갈수록 해남읍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
옥천 영춘리 중앙교회 내부에서 왁자지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교회 한 켠에 마련된 샘터지역아동센터 건물에서다. 문을 여니 아이들과 탁구를 치느라 정신없는 고영훈(49)센터장의 모습이 보인다.샘터지역아동센터는 지난 2005년 공부방으로 문을 열었다. 본래 목사 부부가 맡고 있던 곳이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고 센터장이 지역아동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그의 어깨가 무거운 셈이다.사실 고 센터장은 완도가 고향이다. 완도 읍사무소를 다니다 지난 2002년 그만두고 사설 공부방을 운영했었다. 맞벌이하는 부모가 많고 제대로 된 학원이 없
“저는 서른살에 사범대 입학한 만학도였어요. 배움의 아쉬움과 절실함을 알았죠. 그래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16년째 화원 청소년의 꿈지기가 되어주고 있는 최진식(58)센터장. 인지리의 13평 마을회관에서 시작한 화원지역아동센터가 초·중학생 공부방, 작은 도서관을 갖춘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최센터장과 지역민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최센터장은 생활고를 겪으며 자랐다.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형편상 중학교에 바로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슴엔 늘상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고, 17살이 되던 해 나전칠기 기술자로
“지역아동센터는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온다던데 후원이 왜 필요하냐는 분들도 있어요. 실상 운영해보면 열악한 상황인데 말이죠”지난 2005년 문을 연 황산 시등지역아동센터(센터장 장정순). 황산 면소재지에 위치한 시등교회 교인들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황산의 서당이 되어보자는 것이었다.시등지역아동센터도 처음엔 공부방으로 문을 열었다. 논과 밭에 나가 일하느라 저녁 7~8시에 들어오는 부모들을 대신해 숙제를 봐주고 보호하겠다는 목적에서다. 특히 조손가정이 많아 학교가 마친 후 제대로 된 학습
땅끝지역아동센터는 배우 문근영의 기부로 전국에 회자된 유명한 센터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근영의 유명세보다 더 빛나는 사랑으로 가득하다.땅끝지역아동센터는 지난 2002년 미국에서 건너온 김헬렌 선교사가 영어공부를 가르쳤던 것에서 시작됐다. 갈 곳이 없던 송지 아이들 16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부방을 찾았단다.1년 후 김헬렌 선교사가 건강 악화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자원봉사를 하던 배요섭 목사, 김혜원 시설장이 아이들을 돌보게 됐다. 25평의 좁은 공부방은 시작한지 6개월도 안돼 40여명의 아이들로 가득 찼다.영어와 한문
“저는 엄마에요.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해남읍 해리의 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담장에 알록달록 벽화가 그려진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08년 문을 연 해찬솔지역아동센터다.해찬솔지역아동센터는 황진경(40)센터장의 공부방에서 시작됐다. 디자인 전공인 황 센터장은 미술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고, 결혼 후 공부방을 차렸다.그런데 수업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단다. 집에 가라고 내보내도 공부방 근처 놀이터에서 놀다